안철수와 대선 브랜딩
2017년 5월 9일. 이 날은 결전의 날이다. 제 19대 대통령 선거날, 즉 대한민국 앞으로의 5년을 책임질 리더가 결정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도 하반기는 탄핵 정국으로 하루도 쉴 새 없이 새로운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런 국민들의 마음에 새바람을 일으키듯 시국은 새로운 정권의 갈망으로 흘러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고, 검찰 소환 및 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에 수감되는 상황 가운데 우리나라의 주요 정당들은 각 당별로 다음 대통령 후보자를 선출하는 경선을 치뤘으며 당내 결선에서 승리한 인물들이 후보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정당의 국회 의석수 점유율에 따라 부여된 번호는, 1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2번 자유한국당 홍준표, 3번 국민의당 안철수, 4번 바른정당 유승민, 5번 정의당 심상정이다. 그리고 이외 정당 후보들의 번호는 가나다 순으로 배정되며 무소속 후보들은 추첨을 통해 번호가 부여된다. 결승까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숨가쁘게 달려온 후보들의 하루하루는 어느덧 결승선을 고지에 두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조기 대선으로 각 당의 후보들은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능력과는 별개로, 선거라는 하나의 정치공학적인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디자인’을 조속히 마련해야만 했다. 유권자들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시각적 이미지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각적인 정보가 가장 빠른 반응을 양산해내는 시대이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확장되었기 때문에 과거 대선들과는 다른, 비교적 세련되고도 정제된 형태의 브랜딩이 요구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짧은 시일 내에 가장 효과적이고도 안정된 영향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후보 본인이 소속된 정당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방법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도 역시, 정당의 색상이 상당 부분의 시각적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조금은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 몇 해의 대선 때마다 지적되어 왔던, 선거의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은 이를 넘어 극복될 수 있을지가 이 화제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태까지의 후보자 포스터 레이아웃은 늘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선거철 급조된 디자인팀의 일은 사진을 바꾸고 해당 후보의 번호에 색상을 바꾸는 일 뿐이었지만, 2017년 대선 판도에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홍보 방식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흥미롭다.
Party Identity : 국민의당의 정당 아이덴티티
나는 이 글에서 여러 후보들 중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대선 브랜딩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안철수는 2016년에 창당된 국민의당 소속으로, 의사로서의 삶을 거쳐 우리나라 최대의 백신 기업인 안랩(AhnLab)을 세운 공학자와 교육자의 길을 걷다 2013년 제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한 후보이다.
정치계로 들어온지는 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3년만에 신당을 창당하는 역량을 보이며 대통령 후보로 올라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있는 인물이다. 안철수의 대선 브랜딩을 이해하려면 국민의당의 정당 아이덴티티(PI, Party Identity)를 먼저 알아야 한다.
국민의당은 영어로 ‘People’s Party’라 일컫어지며, 당명을 공개 모집해 이로 결정하였다. 현재 국민의당은 청록색의 삼각 테트라포드 형태 로고를 가진다. 삼각 뿔은 각각 ‘국민’, ‘국가’, ‘정당’을 표방하며 전체적으로 사람 ‘인(人)’자를 형상화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라 알려지고 있다.
해당 로고에 대한 평가는 형태에 대한 것이기 보단 갑작스러운 교체 시기와 계약 관계에 대한 의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창당 당시의 로고 디자인은 공모 경쟁을 통해 [브랜드앤컴퍼니]에서 맡았는데, 창당 50일만에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원 김수민 전 국회의원이 대표 이사로 있는 벤처디자인기업 [브랜드호텔]에 의뢰해 현재와 같은 로고로 교체, 리베이트 논란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당 아이덴티티를 떠올렸을 때 ‘리베이트’가 연상되는 정당은 보기 드물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러한 부정적인 결론으로 귀결되는 PI는 좋지 않고, 바뀌어야 된다고 믿는다. 안철수 본인이 의사 출신이기도 하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고치는 백신 프로그램의 개발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민의당 로고가 일종의 ‘항체’ 형태를 띄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또한 할 수 있다. 짙은 청록의 색상이 진중하고 중후한 느낌을 자아낸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디자인적 관점에서의 평가는 무의미하다. 이미 이 로고는 다른 것을 떠올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Presidential’ Identity : 안철수 대선 브랜딩
그래서인지 안철수의 대선 브랜딩은 국민의당의 아이덴티티에서 최대한 벗어나고자 한 노력이 보인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색상이다. 국민의당을 연상케 하는 짙은 청록색에서 벗어나 밝은 형광 연두색을 사용하였고, 이로 인해 한결 가볍고 유동적인 느낌을 얻었다(다만 이 색상이 네이버의 그것과 같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공공 영역, 공공 디자인으로서의 선거 브랜딩은 해당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의 기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 맥락을 함축하고 있는 언어로서의 디자인이 우선 첫 번째 충족 조건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가능성이다. 서사적 에너지를 갖춘 디자인은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그 사용 어휘가 다 다르며 그에 따라 사용 방법 그리고 배열도 다른 것처럼 시각 이미지도 사용하는 자원, 표현방법, 자원의 배치와 구성에 따라 구현되는 의미가 다르다.” (이윤정, 『사회기호학과 비주얼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안철수의 경우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파격적인 선거 포스터로 대중들의 이목을 확 잡아당긴 케이스이다. 너무나도 아이러니 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사진 구도에, 주요 대선 후보들의 포스터 중간에서 만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기호학자 숀 홀은 그의 저서 『기호학 입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메세지의 표면 아래의 심층 구조나 무의식적인 토대, 숨겨진 상징적 의미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해당 메세지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을 때이다.”
안철수의 포스터는 얼핏 보아도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변화, 파격이라는 프레임을 가져가는 데에는 그러한 포스터가 큰 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 다른 모든 후보들이 얼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도를 가져간 것과 반대로 안철수는 상반신, 그것도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하고 있는 ‘액션’을 포스터에 담았다. “국민이 이긴다”라는 슬로건을 어깨띠에 담았고, ‘국민’이라는 단어와 정당 로고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국민의당’이라는 명칭을 기재하지 않고도 소속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초점이 안철수 본인에게 맞춰지고, 기호 3번과 이름은 아웃포커싱 된 듯 블러 처리되었다. 손과 글자가 포스터 규격을 넘어가 잘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 새로운 기호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배경은 충분했다. 다시 말해 사회기호학적 관점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 오늘날처럼 시각 이미지에 대한 지평이 넓어진 시대에 안철수의 이름과 얼굴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포스터 프레임에 맞지 않는 것, 그것은 오히려 새로움이라는 장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요소였다. 그것은 다른 후보들의 포스터와 비견되지 않는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본 포스터를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어딘가 괴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얼굴 좌우 반전에 있다. 사람의 얼굴은 본래 대칭이 아니라서 좌우를 반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포스터 공개 당시 국민의당이 “포토샵을 최소화” 했다고 주장한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4월 2일 서울 경선 당시 찍은 얼굴은 좌우 반전에, 몸통은 3월 26일 전주 경선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나친 포토샵으로 인한 부자연스러움은 물론이고 어딘가 조작되고 합성된 로봇같은 느낌에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y)’라는 이론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불쾌한 골짜기’라고 표현되는데, 이것은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에 제안된 이론이다. ‘언캐니(uncanny)’라는 개념은 독일의 심리학자인 에른스트 옌치의 논문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러한 감정은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구분 지을 수 없는 간극과도 같은 불일치성에 기인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그 당시 최첨단이었던 모션 퍼포먼스 캡처 기술이 적용된 3D 애니메이션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2004)가 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분명 사람의 표정이 생생하게 적용되었으나 그 섬뜩한 시선이 공허하고 마치 더빙이 잘못된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철학자 진중권은 사람이 언캐니한 대상을 마주하게 되면 방어기제가 발동해 거부감, 혐오감, 나아가 두려움까지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의 미학, 공학자이자 벤처 사업가인 안철수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어딘가 하이테크한 이미지가 반영된 것일까. 즉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된, 이른바 시각적 괴리감을 일부러 조성하는 고도의 미학을 선보이기 위함일까. 그렇게 되려면 포스터 공개 당시 처음부터 합성된 사진이었음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반대였고, 포토샵을 사용했음이 들통나자 이제석 광고디자이너를 들어 이슈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철수 대선 브랜딩은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전혀 관련없는 전담 홍보팀이 담당하고 있다. 이제석 본인도 포커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다. 나는 자문만 했다”며 "국민의당 사람들이 아무래도 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안철수 홍보팀에 디자이너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좋은 디자이너가 없을 뿐이다. 이점은 선거공보를 보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포스터와 동일한 레이아웃의 선거공보는, ‘3번 안철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19대 대통령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라는 무심한 제목이 대체되고 있다(출력소에서 파일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인쇄한 것임에 분명하다).
페이지를 넘겨보면 깔끔하고도 시원한 레이아웃을 볼 수 있지만 거기에서는 여백 그 이상을 찾을 수가 없다. 긴 줄글이 밝은 연두색으로 인쇄되어 가독성이 형편없기 때문이다(CMYK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담당자가 급하게 일 처리를 한 것이 분명하다).
홍보 전반에 걸쳐 전체적으로 색상에 대한 혼란도 존재한다. 국민의당 소속임을 드러내기 위해선 기존의 짙은 청록색을 사용해야 하는데, 안철수 본인의 브랜딩 관련해 새로 채택한 색상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선 두 가지 색상의 포스터가 돌아다닌다. 국민의당이 가진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그대로 고수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보여준다. 게다가 초록색이 두 가지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전혀 다른 초록색들이 혼재되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게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세상 모든 초록색을 사용하겠다고 다짐한 것과 다름이 없다. 현수막에서는 슬로건과 이름은 물론 정당 로고에까지 스트로크를 주는, 전혀 엉뚱한 그래픽을 사용했다.
나는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들로 안철수 홍보팀의 디자이너들이 좋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철수의 포스터로 상징되는 브랜딩은 노이즈마케팅으로써 성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낯설고 파격적인 디자인이 반드시 좋은 디자인에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은 브랜딩은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정에서 결국 변형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
2017. 5. 2.
(C)Jinseo Kim. all rights reserved.
댓글
댓글 쓰기